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어 교육 (문단 편집) == 영어 공용화 == 1990년대에 보수성향 문인 [[복거일]]이 영어 공용어론을 처음 제창했다. [[복거일]] 항목으로. 복거일과 함께 시사영어사 민영빈 회장, 소설가협회 정을병 회장도 영어 공용어론에 찬성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가관인 것이, 찬성자로 서울방송토론에 나온 시사영어사 민영빈 회장은 토익시험 한국대리점을 땄으나 그 시험을 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가 영어 조기교육 바람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이었고, 또 정을병 소설가협회 회장은 문화방송 토론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영어로 소설을 써야 소설이 많이 팔릴 거니 영어 공용어가 좋다."라는 말을 했다.[[http://todayhumor.com/?humordata_1845528|영어 공용화를 하려고 했던 진짜 이유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어(교과)|국어]]를 제외한 [[고등학교]]의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자고 주장했다 [[카더라]]. 그런데 국어를 제외하고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자고 한 것은 후보 시절이고, 이후에 주장했다는 근거는 딱히 없다. [[문화일보]]가 [[2007년]] 10월 5일자로 보도했지만, [[한겨레]] 등 다른 언론사는 전혀 보도한 바 없고, 특히 공약집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당선 직후 괴공약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기사도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0162594|李측 '괴공약' 골머리.]] 하지만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에서 어륀지 사태로 대표되는 영어몰입교육을 주장했고, 실제로 공교육에서 영어회화전문강사를 뽑고 NEAT라는 이름의 국가영어능력평가 시험을 개발하는 등의 삽질을 한 건 사실이다. 고등학교 중 영어상용을 하는 학교는 [[민족사관고등학교]]가 가장 유명하다. 이 학교에서는 [[한글날]]을 제외한 나머지 날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어로만 대화하게 했다고 한다. [[대학교]]에서는 종종 영어로 수업을 하는 과목들도 있는데, [[교수]]들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다. 일단 교수 본인도 영어로 말하려면 피곤하다. 몇 년씩 외국에서 살면서 [[유학]]생활을 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모국어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도 영어로 가르치면 학생들의 이해도가 더 떨어지는게 문제다. 차라리 해당과목의 지식은 해당과목으로 배우고, 영어는 따로 배우는 것이 낫지 영어로 수업을 하다보면 [[학생]]도 교수도 둘 다 영어를 그다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어도 안 늘고 지식전달도 제대로 안되는 불상사만 생기는 때가 잦다. 몇몇 학교에서는 인사만 영어로 하고 한국어로 수업하기도 한다고... 흠좀무 물론 교수가 외국인이라거나 외국에서 태어나 오랜 시간 거주했던 교포라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능숙하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모두 영어가 유창하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문제는 여전하다. 소수이긴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이 오는 경우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외국인이 아닌 교포 출신인 경우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전공에 쓰이는 기초적인 어휘도 영어로 말해줘야 알아듣는 경우가 많기 때문. 외국인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 때도 원칙적으로는 [[한국어]] 강의를 하면서 해당 학생과 1대 1로 대화할 때만 영어를 쓰고, [[시험]]을 볼 때 영어로 쓰게 해 주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 학생 한 명 때문에 전체 반의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도 없고, 애초에 '''[[한국어]]''' 화자가 대부분인 '''[[한국]]'''의 [[대학교]]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어느 나라나 같다. 사실 [[영국]]의 통치를 받고 현재도 오픈되어 있어 외국인과 공존하는 [[홍콩]], [[싱가포르]]나 역시 영국의 통치를 받았던 데다 지역마다 언어 차이가 너무 큰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카타르]], [[바레인]], [[말레이시아]] 그리고 [[미국]]의 통치를 받았고 지역 언어가 다양한 [[필리핀]] 등의 케이스와 한국은 다르다. 단일민족국가에 가까워 외국인과 공존하는 것도 아니고, 국제 금융 등에서 주요 국가라고 하기도 어려우므로 굳이 영어를 공용어화할 이유는 없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초기 문부대신을 역임한 모리 아리노리(森 有礼)[* 이 사람은 일본인이라는 사실 자체에 대해 열등감이 무척 많았던지, 아예 "일본인은 체력, 지능, 언어,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서양인에 비해 열등하다. 그러니 일본 청년들은 미국에 가서 미국여성과 결혼한 후 일본으로 돌아와 체력과 지력이 우수한 백인 혼혈자식을 낳아 그를 바탕으로 일본인을 인종적으로 개량해야 한다."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기까지 했다.[[http://blog.daum.net/timur122556/3324|인종개량을 부르짖었던 일본인들]]]가, [[미국]]의 언어학자 위트니에게 영어로 서한을 보내 "일본의 공용어를 영어로 바꾸자"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헌데 바바 다쓰이(馬場 辰猪)와 같은 학자들이 '''그렇게 하면 상류층만 영어를 쓰고 나머지는 [[일본어]] 쓸 텐데, [[인도]] 꼴 나고 싶소?'''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결국 당시 일본의 영어 공용화는 백지화되었다.[* 다만 일본의 영어 공용화 논쟁은 그렇게 쉽게 끝난 건 아니고, 모리 아리노리 대신이 계속 영어 공용화 정책을 고집하고 심지어 일본어를 금지시키자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자, 이에 반발한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이 1889년 2월 12일 도쿄에서 모리 아리노리를 죽여버린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종결되었다. 그 대신 일본에서는 무리한 영어 공용화 대신 소수의 영어 번역 전문 인력을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었다.[[http://todayhumor.com/?humordata_1864575|링크]]] 새천년을 앞둔 1999년에 총리 직속기구 '21세기 일본의 구상'이 영어 공용화를 국가정책으로 밀고 나서려다 시간이 흘러 여론이 반대론 쪽으로 기울어져 흐지부지되었다. 한편 1990년대 일본에서는 이런 영어 공용화 열풍과는 대조적으로 영어교육 무용론과 폐지론까지도 나왔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